크라스나야르스크 Красноярск - 10 이야기를 싣고 온 발걸음

 그리고
 눈을 떴다. 
 조금 떨어져 있는 내 옆 침대에는 낯선 이가 누워 있었다. 눈을 감고 몇 시간 지나지 않은 뒤였다. 불편하지 않은 잠자리였지만 설잠을 잤다. 시계는 아침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하늘은 여전히 어두웠다. 


 부연 설명을 좀 해야 할 듯 하다. 시간은 시계탑 광장을 모두 구경한 다음으로 돌아간다. 
 햇빛이 묻은 도시의 모습을 모두 눈에 담고 나니 욕심이 생겼다. 조금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야경을 구경하고 싶었다. 발걸음을 서둘러 대로변으로 나온 다음 택시를 잡았다. 인근에 있는 가장 가깝고, 저렴한 숙소를 부탁하였다. 짐을 풀고 저녁을 먹은 다음, 지금껏 걸어온 다리가 무리하지 않을 만큼만 밤거리를 거닐고 싶었다. 그리고 도착한 숙소에서 깨달았다.
 외국인은 별지비자가 있어야만 호텔에서 잘 수 있다는 것을.
 물론 여권은 지참하고 있었다. 그러나 처음 입국시에만 발급받은 비자만이 여권에 붙어있었고, 유학생용 비자는 학교에 두고 온 상태였다. 상황을 설명하고 학생증을 보여줘 보아도, 호텔 프론트 직원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영 좋지 않은 곳이라 쓸데 없이 절차가 복잡한 것인가 보다. 그 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어느 곳을 둘러 보아도,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하였다. 약 1시간 넘게 크라스나야르스크 시내를 택시로 쏘다니며 어떤 호텔, 모텔, 여관을 들러 이야기를 해 보아도, 비자가 없는 외국인에게 내줄 방은 없었다. 
 이미 가로등불이 빼곡히 보도블럭을 비추고 있던 그 때 까지 본의 아니게 밤거리를 산책하고 있었지만, 정신은 이미 날아가고 없었다. 안 그래도 러시아에서 길거리를 아무 생각없이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인데, 한겨울 길거리에서 노숙을 할 생각을 하니 아찔했다. 어쩔 수 없이 역으로 돌아갔다. 24시간 내내 불을 켜 둔 장소는 그 곳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것보다, 빨리 몸이라도 좀 녹여야 다음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크라스나야르스크 역사 야경>


 조금이라도 몸을 피기 위해서 대합실 안으로 들어갔다. 숙박이 목적인 곳이 아니기에, 난방을 틀어 놓았다고는 하지만 바깥보다 조금 따듯한 정도였다. 잠깐 다리를 펴고 앉았다가, 추위를 잊기 위해서 다시 몸을 움직였다. 역의 곳곳을 쏘다니다 보니, 가장 역 구석진 곳에서, 아까는 볼 수 없었던 팻말이 있었다. 거기에는 열차를 환승하는 승객들을 위헤서 1박이 아닌, 시간제로 운영하는 도미토리 방이 있었다. 
 어차피 이 곳도 비자가 있어야 겠지. 하지만 그래도 역이면 되지 않을까? 마음은 반신반의했지만, 몸은 비자가 없다느니 같은 부연설명은 잘라버리고 8시간, 2인실을 외치며 여권을 내밀었다. 직원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 손을 받아 주었다. 그 순간, 내 눈앞에 있는 그 무뚝뚝해보이는 러시아 아저씨가 세상 둘도 없는 성자처럼 보였다. 
 침대가 있고, 뜨거운 물이 나왔다. 지친 몸을 뜨거운 물로 녹이고서는,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지금까지 겪었던 정신적, 육체적인 피로라면 그대로 잠이 들었어야 마땅하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도미토리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지금은 아무도 없는 방이었지만, 곧 누군가가 들어올 것이다. 안전을 생각하여, 최소한 그 모습을 확인하고 자야만 마음이 편안할 것 같았다. 잠깐 지도를 들여다 보며 내일의 동선을 짜다, 그 상태 그대로 눈꺼풀이 고꾸라졌다. 
 덕분에 눈을 뜬 침대 위에는 지도가 그대로 널부러져 있었다. 따듯한 이불 안에서 몸을 푸니, 어느 정도 다시 움직일 기력이 생겼다. 시간은 아침이지만, 지금 정도의 밝기라면 어제 보지 못한 야경을 대신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자기 전에 결정해 둔 목적지인 예배당은 언덕 꼭대기에 있었고, 조금 날이 밝아야 볼 수 있는 곳인 듯 했다. 역 밖을 나와 아직 어둠이 깔린 거리를, 늦게라도 감상해 보기로 하였다.




<아침 9시 15분>



 거리에는 하늘에서 내리는 눈꽃이 어두운 밤하늘을 태양보다 먼저 밝히고 있었다. 마치 별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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