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스럽다 습작

"이번 역은 부개, 부개역입니다. 내리실 곳은..."

 목요일 밤 12시. 인천행 일반열차. 아무도 내리는 사람은 없었다.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한결같이, 고개만을 까닥거리며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간신히 증명하고 있었다. 이대로 아무도 건드리지 않으면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지하철 문이 열리는 소리, 닫히는 소리, 안내방송. 그리고 앉은 자리에서 나오는 넘어갈 듯한 숨소리. 고요하다. 그들의 모습은 사람같다기 보다는 차라리 비석에 가까웠다.

 효진은 공동묘지와 같은 이 차량 안에서 홀로 눈을 뜨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을 인간 생명활동의 근간으로 따진다면, 현재 효진의 상태는 지금 앉아 있는 저들과 별반 다를 바는 없었다. 시선은 어디를 향해 있는지도 모르는 채, 간신히 손잡이를 부여잡은 채 전철의 움직임에 자신의 발을 뿌리뻗고 있을 뿐이었다. 마치 나무와 같이.

".....입니다. 내리실..."

 또 다시 어디인가에 전철은 승객들을 내리기 위해 문을 열었다. 발 밑에 느껴지는 일말의 진동에 잠시나마 효진의 초점이 돌아왔다. 그녀는 부옇게 흐려진 눈을 아무렇게나 훔쳐내고 앞을 주시하였다. 눈 앞에 펼쳐진 고개숙인 사람들의 행렬에, 효진은 어렸을 때 삼촌을 따라가서 보았던 양계장을 떠올렸다. 거대한 철장 속, 어두운 축사 안에서 모가지만 내놓고 모이를 먹는 수많은 산란계들. 그리고 시간이 되면 굴러 나오던 달걀. 잠시나마의 추억에 살풋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다, 다시 고개를 떨군다. 잠시 잊음으로서 봉합된 싫은 오늘이 다시 가슴을 찢고 나왔다. 

 늦게 시작한 점심시간은 극히 짧았다. 밥을 먹다 불려 올라간 회의실에서,  부장은 효진을 닭대가리라고 하였다. 모이 대신 서류를 집어 던졌다. 그녀는 처신을 위해 자신을 죽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언제나 회사생활은 죽어 지내야 한다는 선배들의 말은 서류들과 같이 날아가고, 효진은 부장에게 소리를 지르며 대들었다. 들려서는 안 될 소리를 듣고 회의실로 들어온 다른 동료들은 그 둘을 떼어 말렸다. 어떻게 된거냐며, 괜찮은 거냐며 주변을 시끄럽게 가득 메우는 선, 후배들의 걱정, 혹은 빈말이 담긴 소란 속에서,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동료들에게 괜찮다고 하였다. 입꼬리는 전혀 올라가 있지 않은 채로.

 그녀는 남자친구가 너무 보고 싶었다. 모두가 일하는 밤, 끝없는 불이 켜져 있는 빌딩에서 쫓겨나듯 퇴근한 효진은 바로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회사에 남겨진 다른 일반인들과 같이, 그녀의 남자친구도 밤을 걸어두고 일을 하고 있었다. 짧은 시간, 그는 효진의 넋두리를 경청하고서는, 오늘 볼 수 있냐는 질문에는 오늘은 힘들 것 같다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일을 위해 잠시 전화를 끊겠노라고 말했다. 효진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이 그렇게도 힘드냐며, 일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냐며 자신의 이야기만을 네모난 스마트폰 안으로 쏟아 넣었다. 그녀의 남자친구는 묵묵히, 그러나 끝까지 이야기를 들어주지 못한 채 짧은 인사만을 남기고 일터로 복귀하였다. 서울 어느 이름모를 길거리에서 찌를 듯한 비명이 비어져 나왔다.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는 역 안에 있었다. 지하철의 진동은 머리 양쪽에서 북채를 두들기듯 그녀를 흔들어대고 있었다. 잠시나마 떠오르는 기억의 파편 속에서, 그녀는 그 자리에서 가장 가까운 술집으로 갔다. 안주를 시켰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소주를 땄고, 마셨다. 다시 잔을 따랐다. 거기까지였다. 부은 눈으로 간신히 어두운 창에 비추어 바라본 자신의 얼굴에는, 눈물 자욱 따라 지워진 자신의 화장과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녀는 다시 그 자리에 주저 앉아 미친듯이 울었고, 다시 기억을 잃었다. 

 "...천, 인천역입니다. 계속해서 수인선을 이용해 주실 ... 물건이 없는지 다시 한 번 살펴보시기..."

 역무원은 효진의 어깨를 두드렸다. 다른 승객들은 의자도 아닌 바닥에 주저앉아 웅크리고 있는 그녀에게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풀어진 눈으로 잠시 역무원을 바라보던 효진은, 천천히 일어나 절뚝거리며 전철 밖으로 나왔다. 전철 문은 닫히고, 불이 꺼졌다. 오늘의 마지막 열차라는 방송이 효진의 귀를 잠시 스치고 지나갔지만, 그녀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부장의 고함소리, 동료들의 걱정섞인 독려, 차가운 말 한 마디로 종료된 남자친구와의 통화. 모든 것이 그녀의 귓바퀴 안에서 환청처럼 맴돌았다. 듣기 싫었다. 승강장 한 가운데 주저앉은 효진은 있는 힘껏 귀를 틀어막았다. 하지만 메아리치듯 들려오는 그들의 말소리는 계속해서 머리속을 헤집었고, 그녀는 눈물과 신음으로 힘없이 저항할 뿐이었다.

 별빛이 부딪히는 소리조차 나지 않는 밤에, 그녀 홀로, 소란스러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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